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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통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인천의 역사를 찾는 길
  • 안준모 기자
  • 등록 2019-09-17 18: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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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문통 물길 복원 방향성 찾기 선상토론회

 

인천시 하천살리기추진단은 17일 현대유람선 글로리아호에서 인천하천 현안점검 토론회 세 번째 ‘수문통 물길 복원 방향성 찾기 선상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안병배 인천시의회 부의장과 허인환 동구청장, 허식 동구의회 의원, 동구 문화원장을 비롯한 추진단 관계자, 하천·문화·도시경관·해양 전문가와, 관련부서, 동구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수문통은 지난 1980년대 말 이후 도로로 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고 갯벌과 갈대밭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가 살아 있었던 곳이었으나, 지난 1994년 도로로 복개되면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었다. 

 

선상(船上)에서 진행된 이 날 토론회는 연안부두에서 출발하여 월미도, 북성포구, 만석부두, 수문통, 북항, 심곡천, 공촌천, 경인아라뱃길 갑문 등 인천의 해안선을 바다에서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향후 인천의 하천과 하구, 바다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그림을 그려보는 자리가 됐다. 

 

주제발표자인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수문통 이야기’를 통해서 수문통과 관련된 귀중한 사진자료들로 당시 사회상과 수문통의 변화상 등을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재미있는 한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유동현 관장 “수문통은 조선시대(개항 이전) 주안포 갯골에서 분기한 갯골이 흘러들었던 간석지로서 동구 만석동에서 북쪽 지역인 송현ㆍ송림동까지 이어진 갯골에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수구문(水口門)이 있어 수문통(水門通)이라 불렸다”며 “배다리 철교까지 연결돼 지난 1930년대까지만 해도 해산물과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쪽배가 다녔던 곳으로 갯골이던 수문통 일대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살게 된 것은 1904년 갑신정변 후 일본군들이 중구 전동 근처에 주둔하면서 그곳 주민들을 송현동으로 내쫓으면서 부터로 우리나라의 역사적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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